장욱진, 이응노, 서세옥
《하나, 그리고 우리》
2026년 3월 11일–4월 18일
리만머핀 서울
리만머핀 서울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장욱진, 이응노, 서세옥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3인전을 개최한다. 세 작가는 서로 다른 조형 언어를 구사하며,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고 한국 미술의 지형을 확장해 온 중요한 인물들이다. 본 전시의 제목은 각 작가가 인물을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다루되, 그 형상을 개인의 차원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과 ‘인류’ 전체에 대한 사유로 확장해 온 지점에 주목한다. 수묵화와 유화,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이들은 붓을 하나의 구조적 도구로 삼아 선과 덩어리, 여백의 간격을 조직하고, 리듬감 있는 화면을 구축해 왔다. 이러한 구성은 인물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공동의 공간을 형성하는 방식을 드러내며, 고독한 존재로서의 개인과 집합적 삶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탐색한다.
각기 다른 역사적 환경 속에서 출발한 세 작가는 전통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기하고 변주했다. 이응노와 서세옥은 동양의 수묵화와 서예의 유산을 하나의 근간이 되는 조형적 틀로 여기며, 이를 확장하고 추상화하여 동시대적 문제의식 속에서 재구성했다. 반면 장욱진은 대부분 유화로 작업하며 한때 작가가 ‘붓장난’ 혹은 ‘먹그림’으로 칭한 수묵화를 병행했으나, 문인화의 계보를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위치에 자신을 두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시각적 형상을 본질적이고 단정한 형태로 환원함으로써, 수묵의 미학과 평행선을 이루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시각적 어법을 구축했다. 이들에게 전통은 고정된 형식이나 단순한 참조의 대상이 아니라, 현대 생활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가변되는 구조이자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생동하는 언어였다.
고암 이응노의 작업은 기호의 신체화와 신체의 기호화를 교차시킨다. 고암 이전의 ‘죽사(竹史)’라는 호에서 드러나듯 대나무는 서예가로서 그의 출발점이었으나, 이는 점차 문자로, 다시 인간 형상으로 전환된다. 화면 속 문자는 서 있거나 춤추는 인물처럼 읽히며, 인간의 움직임이 곧 글씨가 되는 순간을 드러낸다. 1970년대 ‘문자 추상’에서 형상은 붓놀림과 서체 속에 해체 및 융합되었고, 1979년 이후 집중된 《군상》 연작에서는 인물들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집단적 리듬을 형성한다. 반복되는 필획과 먹의 농담은 개별 인물의 경계를 흐리면서도 생동하는 몸짓을 남긴다. 동백림사건 이후 타지에서 바라본 시대 현실이 배경으로 읽히지만, 작가는 이를 정치적 의미에 한정하기보다 인류 보편의 몸짓과 공동의 호흡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 10여 년 동안 집중적으로 그린 〈군상〉(1987)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역동적인 대각선 구도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확장되며 강한 운동감을 형성한다. 반복되는 붓질은 개별 인물의 경계를 흐리면서도, 각자의 몸짓을 살아 있게 드러낸다. 검은 먹의 농담과 속도감 있는 선은 집단적 리듬을 만들어내며, 화면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호흡처럼 직조한다.
장욱진의 유화 작업에서는 해와 달, 사람, 강아지, 송아지, 나무, 집 등 그를 대표하는 일상의 요소들이 모두 동일한 평면 위에 놓이는, 단순하고 명료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의 화업은 거주지와 작업 공간의 이동에 따라 구분되곤 하는데, 명륜동, 덕소, 수안보, 용인(신갈) 시기는 각각 특징적인 양식적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수안보 시기는 형식적 실험과 과감성이 두드러진 시기로 평가된다. 이 시기의 〈나무〉(1984)의 화면 중앙에 자리한 한 그루의 나무는 마치 자전하는 지구처럼 화면의 질서를 형성하며, 우주적 순환과 일상의 서정을 동시에 품는다. 절제된 형태, 맑은 색면, 소박한 형상 속에는 삶의 본질을 향한 깊은 사유가 응축되어 있다.
1970년대 말 집중적으로 제작한 먹그림 작업은 한 번에 그어지는 필선의 긴장과 투명성을 통해 또 다른 현대성을 구축했으며, 전통 재료를 유지한 채 개념적 전환을 시도한 사례로 읽힌다.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붓장난’ 혹은 ‘먹그림’이라 명명하며 제도적 범주와 거리를 두었는데, 특히 〈나무 아래 두 사람〉(1982)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화된 형상과 평면적 구성은 전통 산수나 화조의 반복이 아니라, 기호적 최소화를 통해 존재의 구조를 탐색하는 방식에 가깝다.
산정 서세옥은 문인화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수묵 추상의 지평을 확장했다. 1960년 결성된 묵림회는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실험적 수묵 회화를 지향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후 그는 절제된 필획과 반복, 리듬이 강조된 화면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본질을 탐구했다. 대표작 《사람들》 연작에서 그는 최소한의 필획으로 인물 군집을 구성한다. 빠르고 힘 있게 그어진 선들은 때로는 서로 연결되고, 분리되며 화면 위에 긴장과 리듬을 형성한다. 인물은 개별 초상을 넘어 상징적 존재로 환원되고, 반복과 변주의 구조 속에서 집단과 개인의 관계가 추상적 형태로 드러난다. 한지 위에 스며드는 먹의 번짐은 물성과 시간성을 동시에 내포하며, 행위 자체를 화면의 일부로 남긴다.
이응노가 기호와 신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수묵화를 국제적 추상의 담론과 연결 지었다면, 서세옥은 문인화 전통 안에서 추상의 가능성을 확장했으며, 장욱진은 엄격한 장르 구분을 유보하여 존재론적 구조를 본질적 형식으로 환원하였다. 서로 다른 궤적 속에서 이들의 작업은 인간 형상을 단순한 모티브로 다루기보다, 화면 위에서 리듬을 이루는 군집으로, 절제된 형상이자 응축된 존재로, 혹은 전원적 화면 위에서 고요히 자신의 우주를 확장해 나가는 단일한 존재로 제시한다.
작가 소개
고암 이응노(1904–1989)는 한국 전통 문인화를 출발점으로 삼아 서구 추상미술의 최전선에 이른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분단, 민주화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갱신했고, 동서양을 오가며 한국적 전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구현해 냈다.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17세 무렵 서화가 송태회에게 사군자를 배우며 회화의 기초를 다졌고, 1922년 상경해 해강 김규진에게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서화를 익혔다. 이후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남화를 공부하며, 전통 문인화에 서구 회화의 사실적 표현을 접목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해 나갔다. 해방 후 서울로 돌아온 그는 일본 미술의 영향에서 벗어나 민족 고유의 한국화를 강조하고자 ‘단구미술원’을 조직했으며, 1948년부터 1950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58년 파리로 건너간 이후에는 추상미술의 세계로 본격 진입해 특유의 콜라주 기법을 발전시켰다. 한자 자체를 동양적 추상의 근원으로 인식한 그의 시도는 전통의 현대화라는 과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법이었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2년 반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갇힌 경험은 역설적으로 그의 예술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1969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문자 추상 작업을 본격화했다. 특히 1980년대에 이르러 《군상》 연작을 집중적으로 제작하며 국제적 작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1989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이응노의 예술은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가교로서, 전통적인 매체와 조형 언어가 어떻게 현대미술과 조응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다시 고암을 생각한다:고암 이응노 탄생 100주년 기념전》(2004)을 통해 대규모 회고가 이루어졌으며, 2007년 개관한 이응노미술관이 꾸준히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상파울루 비엔날레 명예상(1962), 파리 장식미술관상(1978) 등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파리 장식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이응노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욱진(1917–1990)은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특별활동으로 미술반에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했으나, 일본인 역사 교사에게 항의한 일로 퇴학을 당했다. 이후 여러 화가와 조각가의 화실을 다니다가 스무 살에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체육특기생으로 편입하였다. 뒤이어 도쿄 데이코쿠미술학교에서 수학한 후 귀국해, 1948년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모색했다. 장욱진의 회화는 대체로 소품 중심으로 전개되며, 나무, 집, 새, 아이, 마을, 가축 등 일상적이고 친숙한 소재를 담아낸다. 특히 ‘집’은 작가의 정서적 근원과도 같은 모티프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대상을 꾸밈없이 단순화된 형태로 그려내면서도 치밀한 화면 구성과 밀도 높은 색채 운용을 통해 높은 완성도를 끌어냈다. 절제된 형식 안에 응축된 구조와 균형감각은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다. 작가는 생애 동안 여러 차례 거처를 옮겼으며, 이에 따라 소재와 화풍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그의 작품 세계는 덕소(1963–1975), 명륜동(1975–1979), 수안보(1980–1985), 용인(1986–1990) 시기로 구분된다. 1954년부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가운데 창작에 전념했으며, 1964년 반도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공간화랑(1974, 1981), 국제갤러리(1986)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주요 시기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며 한국 근현대 회화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작고 후에는 호암미술관 《장욱진展》(1995), 갤러리현대 10주기 회고전 《해와 달·나무와 장욱진》(2000) 등 지속적으로 전시가 열렸으며,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2023)을 통해 작품 세계가 재조명되었다. 현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번지고 남아있는: 장욱진 먹그림》이 2026년 4월 5일까지 진행되며, 이어 2026년 4월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서 개인전이 개막할 예정이다. 2014년에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개관하여 그의 작품과 삶을 기리는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미술문화재단 등에 소장되어 있다.
산정 서세옥(1929–2020, 대한민국 대구 출생, 서울 작고)은 1950년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작가는 리만머핀 서울(2021)과 리만머핀 뉴욕(2018)을 비롯하여 갤러리현대(2016), 국립현대미술관 서울(2015), 텍사스주의 휴스턴 미술관(2008), 일본 도쿄의 메종 에르메스(2007), 대전시립미술관(2007), 의재미술관(2003) 등의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다수의 그룹전에도 소개되었다. 대표 전시로는 울산시립미술관의 《한국 근현대미술 흐름: 시대 울림》(202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2023), 리만머핀 서울의 《삼세대(三世代): 서세옥(1929–2020)을 기리며》(2022), 광주시립미술관의 《기증의 시작》(2022),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두려움일까 사랑일까》(2022), 대구미술관의 《나를 만나는 계절》(2022), 대구미술관의 《모던라이프》(202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2020), 리만머핀 홍콩의 《be/longing》(2020),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Beyond Line: The Art of Korean Writing》(2019), 서울대학교미술관의 《또 하나의 한국현대 미술사》(2016), 서울대학교미술관의 《신옥진 컬렉션》(2015), 리움미술관의 《교감》(2014),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어제와 오늘》(2014), 경기도미술관의 《친절한 현대미술 II – 추상은 살아있다》(2013)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부산 비엔날레 《미술은 살아있다》(2008)와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1963) 등에도 참여한 바 있다.
서세옥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2021년 금관문화훈장, 2012년 은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작가는 2022년 석재문화상, 2007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9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로부터 제13회 예총예술문화상 대상, 1994년 일민문화상, 1988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로부터 명예미술학박사학위, 그리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 유수의 공공 및 사립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일본의 후쿠오카시 미술관, 호암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프랑스 문화부, 텍사스주의 휴스턴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박물관, 캐나다 토론토의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우양미술관,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퍼시픽아시아박물관, 원광대학교 박물관, 연세대학교 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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